
KBS LIFE <재난안전119> (25.9.30.) [안전톡톡] 코너에서는 대한적십자사 박종술 사무총장이 출연해 적십자사의 깊은 역사와 재난 현장 곳곳을 달려가며 봉사하는 폭넓은 사회공헌 활동을 조명합니다.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설립된 이후, 근현대사의 주요 순간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왔습니다. 광복 이후 조직법 제정을 통해 법적 기반을 다지고 응급처치, 수상 안전 교육 등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RCY 활동으로 전인 교육과 이산가족 상봉 주선 등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현재는 선진화된 헌혈 사업 운영과 재난 현장 및 취약 계층 지원을 통해 공공의료와 인도주의 실현의 핵심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1. 대한적십자사의 창립 역사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창설되기 앞서 1903년 제네바 협약에 가입하였으며, 1905년 창설을 시작으로 올해로 설립120주년이 맞았다. 1905년 고종황제가 내린 칙령 제47호를 통해 대한적십자 규칙이 반포되었으며, 칙령은 당시 황제의 명령으로서 법률적인 효과를 가졌기에 이는 대한적십자사가 우리나라에 설립된 최초의 연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칙령에는 조직의 성격과 구성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주요 내용은 빈민 구제와 치료 활동을 목적으로 근대화된 서양의학을 도입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박애보세(博愛普世)', 즉 널리 사랑하고 고루 구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주독립 천명 배경]
고종황제의 적십자사 설립 이면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당시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침략 의욕이 있었으며, 고종황제는 국제적십자 위원회의 규칙을 활용하여 자주독립 국가임을 천명하고자 했다. 적십자사는 한 나라에 하나만 만들 수 있고, 제네바 협약에 가입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주독립 국가여야 했다. 그렇기에 이를 통해 대한제국이 일본과 동등한 독립 국가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고자 했다.
2. 광복 이후 법적 기반 확립
독립운동 맥락 계승: 비록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으나,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도 대한적십자회를 다시 만들어 자주독립을 위했다.
광복 후 법적 정비: 광복이 된 1945년 이후, 1947년에 조선적십자사로 재조직되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헌법과 관련 법률이 제정되면서, 1949년에 대한적십자 조직법이 법률 제25호로 제정되었다.
회원 모금 시작: 1949년 4월부터 회원 모집을 시작했으며, 당시의 포스터에는 한자로 "3천만 다 같이 회원이 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당시 한국전쟁을 통해 분단되기 이전의 전체 국민 약 3천만 명 정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초기 활동 재원: 회원 모집 시작 후 115만 명이 적십자 회원이 되었으며, 이 어마어마한 재원을 바탕으로 적십자사는 이재민, 취약계층, 빈민 환자 등에 대한 지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3. 근대 안전 사업 영역의 선구자 역할

[간호원 양성과 독립운동]
안전 사업 영역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간호원 양성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 대한적십자회에서 이루어졌으며, 목적은 독립군 치료를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한적십자사 역사는 독립운동과도 연결된다.
응급처치 도입: 응급처치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48년이며, 미국 적십자사의 응급처치 구호 관련 책자를 번역하여 도입했다. 이를 통해 여덟 차례 강습이 실시되었고, 600여 명의 응급처치 요원들을 양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수상 안전 교육의 시초]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의 안전 요원들과 관련된 수상안전 교육 역시 적십자사가 최초로 도입했다. 이는 1953년에 시작되었으며, 양수리 강습장 등에서 체계적인 인명구조 요원 양성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물놀이 사고 시 어떻게 구조해야 할지 모르던 시절이었으나, 적십자사는 미국 적십자사를 통해 기술과 지식을 전수받아 오늘날에는 매년 수만 명의 요원들을 양성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4. RCY와 청소년 인성 교육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단체 조직을 처음으로 만든 것 역시 대한적십자사이다. 한국전쟁 말미인 1953년에 명예총재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조직 기반을 마련했으며, 그해 부산 암남동에서 식목 행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청소년 적십자 활동은 당시 JRC(Junior Red Cross)라고 불렸으며, 이것은 현재 RCY (Red Cross Youth)의 전신이다. 현재 RCY는 1,800개 조직에 약 10만여 명의 단원들이 초∙중∙고∙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인 교육의 중요성]
RCY 활동은 학문 중심의 지식 습득 외에도 또래들 간의 교류와 놀이 문화를 통해 인성을 종합적으로 발달시키는 큰 의미를 가진다. 나를 중심으로 살기보다는 주변의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질서와 책임 의식을 배우는 것이 RCY 활동의 장점 중 하나이며, 이는 전인 교육의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활동이다.
[스승의 날 제정]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처음 제정한 것도 RCY이다. 1948년 충청남도 강경 지역 RCY 단원들이 세계 적십자 날인 5월 8일을 기념하여 투병 중이거나 은퇴한 은사님들을 찾아뵙고 꽃을 달아드린 활동에서 유래했다. 이 활동은1963년에 '은사의 날'로 제정되었고, 이후 스승의 날로 명칭이 개정되었으며, 날짜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5. 남북 교류: 이산가족 상봉 사업의 주역
[남북 적십자 회담의 개시]
남북 적십자 회담은 1971년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북한 측에 제안하여 시작되었으며, 이듬해에 남북 적십자 본회담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회담의 주요 논의 내용은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후 1985년 이산가족 방문단과 예술 공연단이 서울과 평양에서 서로 교환 방문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본격적인 대면 상봉: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의 공동 선언을 계기로 그해 광복절에 대면 상봉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후 21차례까지 이어졌다. 총 21차례의 상봉을 통해 4,290가족의 약 26,000명이 직접 만남을 가졌으며, 이는 60년 넘게 기다려온 짧은 2박 3일간의 만남이었다.
KBS 특별 생방송과 기록 유산: 적십자사는 1956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측과 남측의 생사 신고서를 접수받아 국제 적십자 위원회를 통해 주고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산가족 찾기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KBS 라디오 프로그램 연계 방송 이후, 1983년 138일 동안 진행된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 찾기'가 이루어졌고, 이때 남측 이산가족 만여 명이 만남을 이루었으며, 이 프로그램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 유산에 등록되었다.
6. 국내외 취약 계층 및 재난 지원
6-1. 사할린 동포 지원 사업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영토였던 사할린 지역 광산에 많은 우리 국민들이 강제 동원되었으나, 일본 패망 후 영토가 소련으로 넘어가면서 당시 우리 정부가 신경 쓰지 못한 약 4만여 명의 동포가 억류된 채로 남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 한국-일본 양국 정부와 적십자사가 공동 협의체를 만들어 지원을 시작했다. 1989년 대한적십자사와 일본 적십자사가 사할린 거주 한인 지원 협약서를 맺었고, 1992년에 최초로 영주 귀국을 희망한 77명을 대한민국으로 귀국시키는 데 성공했다.
2025년 9월 현재 영주 귀국한 동포는 총 5,600여 명이며, 이 중 생존자는 3,300여 명이다. 이들을 위해 정부와 적십자사가 거주지를 제공했으며, 고령자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1999년에 인천에 사할린동포 복지 회관을 만들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6-2. 원폭 피해자 지원 사업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당시 약 7만여 명의 한국 동포가 거주했으며, 이 중 4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원하지 않는 안타까운 피폭자들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이들을 돌볼 여력이 부족했으나, 1986년에 일본 적십자사와 대한 적십자사가 함께 제한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1991년엔 정부가 대한적십자사에 원폭 피해자 복지 기금을 관리하도록 수임하면서 1994년 3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고, 1996년에는 경남 합천에 원폭 피해자 복지 회관을 개관하였다. 적십자사는 피해자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치료와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현재까지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6-3. 국내 대형 재난 구호 활동
90년대 이후의 대형 재난으로 1993년 전라북도 부안의 위도 페리호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이 있다. 이러한 재난 발생 시 적십자사는 구조 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을 투입하여 피해자 가족 지원 활동을 수행했다.
2003년 발생한 인재(人災)였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우리나라에 이원화된 재난 관리 체계를 통합하는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이 제정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경기도 분향소에서 적십자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단일 재난으로 유례없이 366일 동안 24시간 가족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했으며, 이는 저력 있는 조직 인프라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국가정보 자원 관리원 화재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대한적십자사는 현장 진화 대원들을 대상으로 급식 활동을 전개하고, 진화가 완료된 후에는 주변 목격자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지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6-4. 국제 재난 구호 활동
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의 성장: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연간 정부 예산의 50% 정도에 해당하는 원조를 받던 수혜국이었으나, 이제는 어려움이 있는 국가를 원조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대한적십자사는 1956년 한국전쟁 이후 베트남과 헝가리의 수재민 지원 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후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2005년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3년 필리핀 하이옌 태풍, 2015년 네팔 지진, 2022년 우크라이나 사태,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등 큰 국제 재난 현장마다 국민들이 기부해 준 성금을 통해 인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적십자 운동 원칙: 적십자사 운동의 기본 원칙은 한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돕는 데 있어 동등한 책임과 의무를 갖는 것이며, 국내외 재난 시 적십자사는 늘 함께한다.
7. 공공 의료 및 혈액 관리 사업
7-1. 혈액 사업의 선진화

[혈액 사업 시작]
한국전쟁 당시 혈액 부족으로 미국을 통해 혈액을 공수받았던 역사가 있으며, 이후 1958년에 대한적십자사가 국립 혈액원을 인수하면서 혈액 사업을 최초로 시작하게 되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적십자사가 국민들에게 헌혈에 대한 호소를 하면서 자발적 헌혈이 시작되었으나, 당시에는 유상으로 혈액을 제공하는 매혈이 공존하며 사회적 병폐를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1970년 혈액관리법을 개정하여 매혈을 금지하고 헌혈로 전환을 시작했다. 대한적십자사는 1974년에 매혈 중단 선언을 하고 완전 헌혈로 전환했으며, RCY 단원과 자원봉사자를 통해 대규모 헌혈 캠페인을 진행했다.
국민들의 동참으로 헌혈 실적은 단기간에 증가하여 1989년 100만 명, 1995년 200만 명, 2014년 300만 명을 돌파했다. 현재 대한적십자사 혈액 사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근간은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헌혈자 모집이 매우 어려웠으며, 정부는 재난 문자를 통해 헌혈 참여를 독려하는 일이 처음으로 발생했을 정도로 혈액 공급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중요했다.
최근 헌혈 참여자는 280만여 명이지만, 헌혈 희망자를 포함하면 300만 명이 넘는다. 국민 헌혈률은 5.5%로 선진국의 5~6%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 수준의 국민 헌혈률을 유지하고 있다.
7-2. 적십자 병원의 공공성 강화
병원 역사와 근대 의학: 적십자 병원의 역사는 적십자 역사와 같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며, 근대 의학 체계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1970년대에는 전국에 14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었다. 적십자사는 의료 체계가 전혀 없는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해 1970년대에 병원선 두 대(백령호, 무궁화호)를 운영하며 낙도 지역까지 의료 공급망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코로나19 대응: 적십자 병원은 현재 6개의 급성기 병원과 1개의 재활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적십자 병원의 병상수는 국내 전체 병상수의 5%에 불과했으나, 코로나 시기 국내 코로나 환자의 70%를 감당했으며, 이는 공공의료 측면에서 적십자 병원의 존재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8. 대한적십자사의 주요 재원 확보
적십자사의 거대하고 지속적인 활동에 필요한 재원은 국민들로부터 마련된다. 국민들은 1년에 한 번 적십자 회비에 지정 참여하며, 연간 300만 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후원시스템] 매월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후원하는 정기 후원자도 약 30여만 명 정도 있으며, 국내외 재난 발생 시 단체, 기업, 기관으로부터 기부 금품을 답지하게 되면서 재원이 모인다. 이는 적십자의 모든 활동을 이루게 하는 근간이다.
9. 창립 120주년 기념행사 개최
120주년 기념식: 대한적십자사 창립 120주년 기념행사는 10월 27일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120주년 기념 사진전: 12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11월에 서울, 부산, 대전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이는 120년의 적십자 걸음걸이를 사진에 담아 그 생생한 기록을 전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적십자 바자 개최: 적십자 바자라는 행사가 있으며, 이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바자 행사이다. 이 행사는 적십자 여성봉사 특별 자문위원회 조직과 후원 조직인 수요봉사단이 주축이 되어 진행된다. 11월 10일에 코엑스에서 진행된다.
인도주의 학술대회 개최: 120주년을 기념하여 인도주의 학술대회도 진행했으며, 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와 겹쳐 더욱 의미가 깊다. 학술대회는 1905년 대한적십자사 창립과 고종황제 시절을 조명하고, 대한적십자사와 독립운동 간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 당시 해외에 계신 한인들의 활동 참여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학술 연구도 진행되었다.
10. 30초 안전 챌린지
명절에 가족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간혹 기도 막힘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처 요령을 숙지해야 한다.
1. 기도 막힘 환자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않고 즉시 119에 전화해야 한다.
2. 환자의 의식을 확인한 후, 의식이 있는 경우 환자의 등을 다섯 번 정도 두드려 이물질이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3. 등 두드리기로 이물질이 나오지 않을 경우, 환자 뒤에서 양팔로 주먹을 쥐고 엄지가 복부를 향하도록 한 다음 위로 밀쳐주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4. 만약 환자가 의식이 없을 경우에는 바로 가슴 압박, 즉 심폐 소생술을 30회 진행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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